올 한 해를 돌아보며 '자유'라는 단어가 이만큼 수난을 당하던 시절이 또 있었나 싶은 생각을 했다. 꽤 오랜 기간 사회 현안에 대한 각종 토론 자리에 참석했지만, 올해만큼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을 많이 맞닥뜨린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결국 나는 한국에서 '자유'라는 이름을 쓰며 대중 앞에 나서는 이들 중 상당수는 진짜 자유주의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자칭 자유주의자'였을 뿐이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이 2015년에 가장 눈에 띄게 했던 일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지지다.
프롬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권좌에 오르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자유와 개인주의를 무한히 확장했다는 자본과 시장은 공동체의 안정을 파괴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가 전체주의의 귀환이다. 이처럼 명료한 자본주의 비판서를 자본주의 찬양서로 둔갑시키다니?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한경비피·2014)이 자유기업주의자들에 의해 원서 자체가 훼손되었듯이, 왜곡의 달인인 이들이 국정교과서 사업의 배후라는 것을 주시해야 한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2017년부터 사용될 텐데, 그 점을 두고 어떤 국정화 반대론자는 "1년밖에 못 쓸 교과서를 시도하는 대통령의 정신 나간 행태"라고 꼬집는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정신 나간 면은 국사를 국정화한다는 데 있지 1년밖에 못 쓸 교과서에 집착하는 데 있진 않다. 1년밖에 못 쓸 교과서인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기 때문이다. 국정화 강행으로부터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통령의 의지는 다음 총선을 자신의 주도로 승리하고 자신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는 후계자를 내세워 대선에 승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교육감 선거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가 노벨상을 수상하자 한국에서는 다시금 피케티와 디턴을 대립시키며 노벨상이 불평등보다 성장에 손을 들어주었다는 식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듯, 이는 디턴의 주장에 대한 무지 아니면 왜곡의 결과였다. <위대한 탈출>의 주된 관심은 인류가 빈곤과 질병에서 탈출해온 역사였다. 그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성장을 자극할 수 있으며 성장과 함께 불평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썼다. 그러나 그의 책은 여러 곳에서 과도한 불평등은 경제에 해롭다고 강조하며, 특히 미국에 관한 장에서는 심각한 불평등이 부자들의 정치적 지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의 말마따나 "이미 탈출한 이들이 탈출로를 막아버리고 그들의 지위를 보호하는 경우 불평등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커져만 가는 경제적 격차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걱정거리다. 주류든 비주류든 경제 정책을 연구하는 이들 사이에 '불평등 확대 경향'은 이미 의견이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런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기존에 나온 다양한 방법론을 더듬어보면, 대략 세 갈래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성장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길이다.